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다 미츠나리 (문단 편집) == 자손 == 슬하에 3남 3녀가 있었다고 한다. 장남인 '''이시다 시게이에'''(石田重家)는 세키가하라 전쟁 때 원래 오오타니 군에 지원하려 했으나 도요토미 측에서 이시다한테 인질을 요구해 전쟁 동안 오사카 성에 유처되었다. 세키가하라가 끝난 후 이에야스는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쿄토 쥬쇼인이라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절에서 불교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 중 제자인 소신니(祖心尼, 본명은 오나)에게 조카인 오카 키치에몬(岡吉右衛門)을 사위로 소개해줬다. 104세로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장수했다. 차남인 '''이시다 시게나리'''(石田重成)는 어린 시절 히데요리의 시동으로 일했다. 세키가하라가에서 서군이 패했을때 [[츠가루 다메노부]](津軽信建)가 보호해주었다. 다메노부는 원래 난부 가의 신하였다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는데 이 반란으로 아버지 이시카와 다카노부를 잃은 난부 노부나오는 다메노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이 와중에 오다와라 합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히데요시는 동북쪽 다이묘들에게 참전하라고 명령, 다메노부와 노부나오 두사람은 모두 참전하였다. 이 때 노부나오가 다메노부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토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츠나리가 중재하여 다메노부는 다이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일로 미츠나리에게 큰 은혜를 입은 다메노부는 세키가하라 합전 때 서군에 속했던 아들 츠가루 노부다케에게 미츠나리의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이후 미츠나리 일족은 히로사키 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시다 시게나리는 '''스기야마 하치베에'''(杉山八兵衛)로 개명했고 여동생 다츠히메가 츠가루 다메노부의 며느리가 되어 그연으로 히로사키번의 중신이 되었다. 현재 스기야마 당주는 15대로 현재까지 이어져있다. 그의 후손 중 한 명인 시라카와 토루(白川亨)는 이시다 미츠나리에 대해 주로 연구한 역사학자로 미츠나리와 [[코다이인]](네네)은 사이가 좋았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시라카와는 "미츠나리와 네네는 친밀한 사이였고, 반대로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어머니로서 정치에 개입한 요도도노와 그의 측근을 싫어했다"는 내용이 담긴 연구서{《이시다 미츠나리와 그 일족》(石田三成とその一族)}를 발표하기도 했다. 3남인 '''이시다 사치키''' 또는 하치로는 세키가하라 합전 중 그를 보호해준 가신이 서군의 배신으로 죽고, 이에야스가 목숨을 살려줬다. 맏형처럼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장녀와 차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녀는 이사다 가신인 야마다 하야토노소(山田隼人正)에게 시집갔다. 야마다 하야토노소의 고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실 차아노 츠보네(茶阿局)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야마다 하야토노소가 마츠다이라 타다테루(松平忠輝)의 가신으로 사관하고, 여동생 다츠히메의 도움으로 에도에서 여생을 보냈다. 차녀는 가모 가신인 오카 시게마사(岡重政)에게 시집갔다. 시게마사가 이에야스의 3녀 후리히메(振姬)와의 갈등으로 할복 처분을 받은 뒤 차녀는 오카 가를 떠나고 오바마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둘의 유일한 자식인 오카 키치에몬(岡吉右衛門)은 가모 가신인 마치노 유키카스(町野幸和)가 보호해주고 그와 소신니의 딸에게 장가를 갔다. 키치에몬의 딸 오후리노 가타(お振の方, 미츠나리에게는 증손녀)는 [[카스가노츠보네]]의 조카[* 카스가노츠보네와 소신니는 5촌이다.]이기도 해서, 이 연줄로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측실이 됐다. 불행이도 오후리는 이에미츠의 첫째 아이 치요히메(千代姫)를 낳은 3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출산 후 몸이 안좋아졌다고 하는데 출산했을 당시 나이가 최소 13세([[만 나이|현대 일본으로 12세]])였을 거라고 한다.] 그 뒤 치요히메는 [[고산케]] 오와리 번 2대 당주 도쿠가와 미츠토모(徳川光友)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미츠나리한테는 아니지만) 이에미츠의 혈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건 치요히메 뿐이며 [[천황]]에도 이어져 있다. 3녀 이시다 다츠히메(辰姫)는 [[코다이인|네네]]의 양녀가 되었고 후에 다메노부의 아들이자 2대 번주였던 츠가루 노부히라(津軽信牧)에게 시집가서 훗날 3대 번주가 되는 맏아들 츠가루 노부요시(津軽信義)를 낳았다. 정실이었지만 노부히라가 이에야스의 양녀를 정실로 들어 밀려나 33세 나이로 사망했다. 단 츠가루의 가독은 다츠히메의 아들인 노부요시가 물려받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